공장에 가지 않아도 된다… 교실로 들어온 ‘Physical AI’

백광진 기자

등록 2026-08-10 09:35

지난 8월 6일 내쇼날시스템 본사에서 열린 업무협약식에서 김영호 내쇼날시스템 대표(왼쪽 네 번째)와 이용관 리쉐니에 대표(왼쪽 세 번째)가 협약서에 서명한 뒤 참석자들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서류가방 크기의 알루미늄 케이스를 열자 PLC와 서보모터, 센서가 빼곡히 들어찬 소형 설비가 드러났다. 노트북 화면에는 같은 장비가 3차원 모델로 떠 있었다. 화면 속 모델의 축을 움직이자 케이스 안의 실물이 똑같이 따라 움직였다.


지난 8월 6일 부산 내쇼날시스템 본사. 제조AI 전문기업 리쉐니에(대표 이용관)와 용접·레이저 자동화 전문기업 내쇼날시스템(대표 김영호)이 ‘AI·디지털트윈 기반 스마트제조 교육사업’ 업무협약을 맺었다. 두 회사는 공동 브랜드 ‘제조AI Academy’로 공업교육 현장을 함께 공략한다.


협약식에서 이용관 리쉐니에 대표가 직접 시연한 장비는 CPS(사이버물리시스템) 교육용 키트 ‘FixMachine’이다. PLC 프로그래밍부터 데이터 수집, AI 학습, 디지털트윈 연동까지 스마트공장 구축의 전 과정을 이 한 대로 실습한다. 모션·컨베이어·회전기계 예지보전 3종이 이미 학교와 연수원에 공급되고 있고, 가공기용 교육장비 키트도 개발 중이다. 웹 기반이어서 강사와 학생이 떨어져 있어도 장비를 구동하고 데이터를 볼 수 있다.


교육 현장에서 이 방식이 갖는 의미는 작지 않다. 그동안 학생들이 로봇 제어나 설비 데이터를 제대로 다뤄 보려면 산업체를 직접 찾아가야 했다. 안전 문제와 일정 조율 탓에 견학 수준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FixMachine은 실제 PLC와 자동화 장비, 센서를 교실 안으로 옮겨 놓는다. 학생은 공장에 가지 않고도 로봇·모션 제어, AI 이상탐지 모델 학습, 제조데이터 수집·분석, 디지털트윈 모델링까지 4차 산업혁명이 요구하는 역량을 한자리에서 실습할 수 있다.


눈에 띄는 대목은 이 키트에 교육용으로 따로 만든 모사 프로그램이 아니라, 실제 공장에 납품 중인 상용 플랫폼이 그대로 들어간다는 점이다. 엣지 데이터 수집 플랫폼 ‘DataStone’과 클라우드 AI 분석 플랫폼 ‘MAIPOLE’이다.


이 대표는 “중소기업의 스마트공장 도입이 실패하는 이유는 솔루션 성능이 아니라 그것을 운영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라며 “학교에서 익힌 도구가 취업하면 쓸모없어지는 구조부터 끊어야 한다”고 말했다.


리쉐니에는 이 문제를 현장에서 확인해 왔다. 2020년 12월 이후 정부 연구사업 16건을 수행하며 포장설비 베어링 파손 사전 감지, 이송로봇 모터 고장 조기 진단, PCB 생산라인과 SMT 실장라인의 디지털트윈 구축 등 실증 사례를 쌓았다. 지난해에는 독일 하노버 메세에서 국내 가동 설비를 현지에서 실시간 재현해 보이기도 했다. 2025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상과 2026년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 기술경영인상을 받았고, 센서 데이터 관리에 관한 국제표준(ISO/WD 8000-260) 개발에도 참여하고 있다.


용접 분야는 내쇼날시스템이 맡는다. 용접 품질을 AI가 판정하고, 로봇 용접 경로를 실습하며, 용접 전원 데이터를 분석하는 교육 기자재를 개발하고 실습 교육과정도 함께 운영한다. 용접기와 산업용 레이저를 자체 생산해 32개국에 수출해 온 이 회사는 전국 주요 대학과 30여 개 특성화고에 기술교육을 지원해 왔다.


김영호 내쇼날시스템 대표는 “용접은 공업계고 필수 과목이면서 숙련도 편차가 가장 큰 분야여서 AI를 접목했을 때 교육 효과가 가장 크다”며 “각자 가장 잘하는 영역을 맡아 완결성 있는 라인업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교육 설계의 배경에는 대학이 있다. 이 대표는 한국공학대학교 산학협력중점교수로 재직하며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정보통신기획평가원이 지원하는 지역지능화혁신인재양성사업(Grand-ICT연구센터) 세부과제를 맡고 있다. 재직자를 산업 AI 석사로 길러내는 과정에서 다듬은 커리큘럼이 이번 ‘제조AI Academy’에 그대로 옮겨진다. 리쉐니에가 지난해 중소벤처기업연수원에서 재직자 대상 예지보전 실습 특강을 운영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두 회사가 그리는 종착점은 ‘Physical AI’다. 데이터로 학습한 지능이 로봇과 설비라는 물리적 실체를 통해 현실에서 판단하고 움직이는 단계다. 데이터를 모으는 법을 배우고(제조데이터), 그 데이터로 판단을 만들고(AI), 가상에서 검증한 뒤(디지털트윈), 실제 장비를 움직이는(로봇) 순서가 교육 과정 안에 그대로 담긴다. 교실에서 이 흐름을 한 번 경험한 학생은 현장에서 같은 구조를 다시 만나게 된다는 것이 이 대표의 설명이다.


두 회사는 올 하반기 각각 용접 분야 기자재와 가공기 분야 실습 키트 시제품 개발에 착수해, 내년 시범 도입을 거쳐 공업계 특성화고와 마이스터고, 폴리텍대학으로 보급을 넓힐 계획이다. 교사 연수와 재직자 교육까지 이어 붙이면 학생에서 교사, 재직자로 이어지는 인재 사슬이 완성된다. 교육을 받은 인력이 산업 현장에서 제조AI 도입을 이끌고, 그 현장이 다시 교육 수요를 만드는 선순환이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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